S STORY
안구 보존과 완치
두 마리 토끼 잡는 비법은?
안구 내 종양 치료의 베스트 닥터 이승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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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이나 눈 밑의 피부뿐 아니라, 안구 안에도 종양이 생긴다고요? 낯설기도 하고 더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종양은 인체 어디에나 생길 수 있으며, 안구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행히 안구 내에서 발생하는 종양은 대부분 양성이고, 암은 희귀한 편입니다. 오히려 다른 장기에서 발생한 암이 눈으로 전이된 전이성 종양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안구 내 전이암을 먼저 발견하고 폐암이나 유방암 등의 원발암을 진단받는 경우도 최대 25%에 이릅니다. 안구 내 원발 악성종양은 대표적으로 포도막흑색종, 망막모세포종, 유리체망막림프종이 있습니다.
흑색종은 피부에 생기는 암인 줄만 알았습니다. 포도막흑색종도 피부흑색종처럼 자외선 때문에 생기나요?
안구의 외벽을 한 꺼풀 벗기면 안쪽으로 까맣게 안구를 둘러싼 얇은 막이 있는데, 이 조직이 포도막입니다. 포도막에 둘러싸인 안구의 모습이 마치 까만 포도알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포도막은 피부 다음으로 흑색종이 많이 발생하는 부위입니다. 피부에 생기는 흑색종과 달리 포도막흑색종은 자외선의 영향이 미미한데, 눈 속 깊숙한 곳까지 자외선이 잘 도달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포도막흑색종의 원인이나 위험인자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백인종에서 흔하고, 오타반점이 있는 사람, 용접공 등에서 발생률이 좀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중년에서 잘 생기고, 간으로 잘 전이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포도막흑색종은 항암제가 잘 듣지 않아 방사선치료나 수술을 주로 시행하는데, 치료 후 5년 이내에 약 30%의 환자에서 전이가 나타나므로 치료를 마친 뒤에도 꾸준한 경과 관찰이 필요합니다.
망막모세포종과 유리체망막림프종은 대체로 어떤 환자들에게 많이 생기나요?
망막모세포종은 5세 미만의 소아에서 주로 발생하며, 환아의 40%가량은 몸의 모든 세포에 RB1 유전자 돌연변이를 한쪽 염색체에 가지고 있는 유전성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부모가 망막모세포종 병력이 있다면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안과 검진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생존율은 100%에 가까울 정도로 좋은 편이지만, 간혹 늦은 진단 또는 치료의 한계로 안구 보존이 불가능한 경 우가 있습니다. 유리체망막림프종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고령과 면역저하가 주요 위험인자로 꼽힙니다.
안구 내 종양 환자들은 주로 어떤 증상을 경험하나요?
포도막흑색종은 겉에서 잘 보이지 않고 증상도 거의 없어서 안과 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경우가 절반에 가깝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시력 저하, 시야장애, 비문증 등의 증상으로 안과를 찾았다가 암을 발견합니다. 망막모세포종은 부모가 아이 눈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양이 발생한 눈의 동공이 하얗게 보이는 백색 동공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또 사시가 생길 수 있어서 시력 저하와 사시를 치료하기 위해 안과를 찾았다가 암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유리체망막림프종 환 자들은 눈앞에 무언가 떠다닌다, 뿌옇게 보인다, 시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증상을 많이 호소하는데, 포도막염 같은 다른 병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비특이적 증상이어서 증상만으로 병을 알아채기는 어렵습니다.
안구 내 종양 진단은 어렵진 않은가요?
몸 안에 숨겨진 다른 장기와 달리 눈은 직접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종양 발견 자체는 수월한 편입니다. 그러나 안구 특성상 충분한 양의 검체를 얻기가 쉽지 않아 조직검사를 해도 확진이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유리체망막림프종은 병의 양상이 포도막염을 비롯한 안구 내 염증질환과 매우 비슷하고 조직검사의 정확도가 낮아 진단이 늦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브란스 안과병원은 유리체에서 림프종 관련 특이 유전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유리체 전장유전체 분석 결과를 세계 최초로 보고했고, 이를 유리체망막림프종의 진단에 활용해 진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습니다. 망막모세포종은 조직검사 없이 임상 양상만으로 암을 감별해야 하므로 경험 많은 안구 내 종양전문의에게 진단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구라는 특성 때문에 치료법도 제한적일 것 같습니다. 안구 내 종양 치료에서 어떤 점을 특히 고려해야 할까요?
암이니까 당연히 완치가 가장 중요한 목표겠지만,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해 시력과 안구를 보존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먼저 시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만약 시력을 살리지 못할 것 같으면 미용적인 면을 고려해 안구를 적출하지 않는 치료법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실제로 포도막흑색종의 경우, 근접 방사선치료 개발 이후 안구 적출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근접 방사선치료는 동전 크기의 방사선판을 수술로 종양 근처에 심었다가 일정 기간 후 제거하는 치료법으로, 전 세계적으로 포도막흑색종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는 치료입니다. 종양이 다소 크다면 종양 적출술을 시행해 크기를 줄인 후 근접 방사선치료를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종양이 지나치게 크거나 재발한 경우에는 안구 적출을 주로 합니다.
세브란스 안과병원은 2010년 국내 최초로 망막모세포종 환아들에게 안동맥 내 항암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안동맥 내 항암 치료는 어떤 치료인가요?
망막모세포종의 치료는 항암치료가 기본인데, 눈 안의 작은 종양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독한 항암제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무엇보다 전신 항암치료만으로는 안구를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안동맥 내 항암치료입니다. 안동맥 내 항암치료는 마치 심장에 스텐트시술을 하듯 얇은 카테터를 안동맥까지 접근시킨 뒤, 이를 통해 항암제를 안구 내로 직접 주입하는 치료입니다. 안동맥 내 항암치료를 시작한 2010년 이후 세브란스에서 치료받은 망막모세포종 환아들의 안구 보존율이 크게 향상됐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안구 적출이 불가피할 정도로 진행된 망막세포종 환아들 의 5년 안구 보존율이 3.2%에 불과했으나, 2010년 이후 에는 44.5%로 14배가량 향상되었습니다. 그 외에 안구 내 항암치료와 전신 항암치료 병행 요법, 안구에 항암제를 직접 주사하는 치료, 근접 방사선치료 등도 국내 최초로 도입해 환자 맞춤형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빨리 알아챌 만한 특별한 증상도 없고, 치료가 어려운 안구 내 종양을 예방하려면 일반인들은 어떤 것을 꼭 알아야 할까요?
눈에도 암이 생길 수 있고, 다른 장기의 암이 눈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40대가 되었다면 1년에 한 번씩은 안저검사를 포함한 종합적인 안과 검진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안구 내 종양뿐만 아니라 녹내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안과 질환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초기에 발견할수록 예후가 좋기 때문입니다. 안저검사는 꼭 큰 병원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검사니까 다양한 안과 질환의 조기 진단과 눈 건강을 위해 추천합니다.
이승규 교수
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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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 내 종양, 황반변성, 유전망막증 등 망막과 포도막 관련 난치성 질환의 진료와 치료를 맡고 있다. 희귀하지만 예후가 나쁘고 까다로운 안구 내 종양의 치료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고 연구에 힘써, 환자들의 시력과 안구를 최대한 보존해 그들의 일상까지 보호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진료와 수술에 나설 때마다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코람데오를 새기며,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월간 <세브란스병원> 2023년 06월호
에디터 안은지 포토그래퍼 최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