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양
신분의 벽 뛰어넘은 대의 독립운동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된 박서양은 세브란스의학교에 교수로 부임해 처음에는 화학을, 나중에는 해부학 과 외과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1917년 세브란스의학교가 전문학교로 바뀌는 과정에서 박서양은 국경을 넘어 북간도로 떠났다. 그는 북간도에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었다.
박서양의 활동은 의료나 교육에 그치지 않았다. 박서양은 북간도 최대의 독립운동 조직인 대한국민회에서 군의로 활동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소의에서 나라를 구하는 대의로서 역사적 책임을 성실히 감당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수술 장면(중앙 왼쪽부터 허스트, 박서양, 에비슨)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수술 장면.
(중앙 왼쪽부터 허스트, 박서양, 에비슨)


1885년1885년 9월 30일 서울 관자골에서 출생
1900년1900년 제중원의학교 입학
1908년1908년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 모교 교수 부임
1917년1917년 북간도 연길현 국자가에 숭신학교 설립, 교장 취임
1921년1921년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군의
1940년1940년 12월 15일 서울 수색에서 사망
2008년2008년 8월 15일 건국포장 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