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조합으로 무한 퇴행의 고리를 끊는다
미토콘드리아질환은 10만 명에 한 명 꼴로 발병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건강한 이들은 그냥 안심하고 살아가면 되는 걸까요? 나는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수준에 머물지 말고, 사회경제적으로 도울 수 없다면 관심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환자와 함께 섞여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물질적인 지원보다 그런 따듯한 배려가 더 절실한지도 모릅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영목 교수
‘미토콘드리아질환.’ 듣느니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미토콘드리아라는 단어 자체가 고등학교 생물 시간을 끝으로 작별한 고대 언어나 다름없는 데다가 그게 질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의 작은 기관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중에서도 뇌, 신경계, 근육처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부분에 두드러진 이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이영목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당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참으로 시시하고 초보적인 질문에서 시작할밖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흔한 질병은 아닌가 봅니다.
10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희귀질환이라고 할 때는 병 자체가 정말 드물 수도 있고 진단이 어려워서 잘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미토콘드리아질환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흔히 1-2세에 발병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데다가 증상까지 다양해서 엉뚱한 데를 헤매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사례가 적잖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질환’인데, 가늠할 만한 특이한 증상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교과서적인 답을 하자면 ‘특징적인 증상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이 병 같기도 하고 저 병 같기도 해서 환자는 병원을 순례하기 십상이죠. 그나마 특징적인 증상이 있다면 발달지연이나 퇴행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잘 자라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못 걷고, 못 앉고, 못 먹고, 호흡까지 불안정해지는 식으로 나빠지는 경우에 미토콘드리아질환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의사들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진단이 돼도 치료법이 충분치 않은 터라 빨리 찾아내 관리하는 게 대단히 중요한데,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거든요.
진단도 어렵고 치료법도 충분치 않다면 병원을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 이것만 먹으면 다 낫는다고 할 만한 치료약은 아직 없습니다. FDA 승인이 난 약품이 단 한 종도 없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빨리 진단해서 경과를 예측할 수 있으면 정보를 가지고 환자를 돌볼 수 있습니다. 비록 100점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효과를 보이는 약들을 쓰는 일차적 치료로 퇴행 속도를 늦추거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가능성이 있는 약물들을 써서 영양과 호흡, 감염 등을 관리해주면 잘 자라고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봐야 병실 안에서만 생활하는 정도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토콘드리아질환 중에는 갓난아이 적에 발병해 보통 1년 안에 사망하는 리(Leigh) 증후군이라는 게 있습니다. 교과서에도 5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돼 있을 만큼 치명적인 질환인데, 제 환자 가운데는 이 병을 앓으면서도 스무 살을 바라보는 친구가 있습니다. 잘 걷지 못하는 발달지연 증상을 보여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찾아온 환자였는데, 다행히 체계적인 검사를 거쳐 정확한 진단을 받았습니다. 퇴행이 진행된 상태라 휠체어 신세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보존적 치료를 꾸준히 해서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전용 치료제가 아직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어떤 약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MELAS, MERRF, Leigh 같은 여러 증후군이 미토콘드리아질환에 속하지만, 그 어디에도 끼워 넣을 수 없는 비특이적 질환들이 2/3를 넘습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공통 원인을 가졌을 뿐, 증상은 제각각인 거죠. 그래서 환자마다 맞춤 처방이 필요합니다. 어떤 약을 썼더니 이러저러한 퇴행 증상이 더뎌지거나 멈추더라는 자료를 전 세계에서 끌어모아다가 우리만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미토콘드리아 칵테일이죠.
그렇다면 세브란스에는 세브란스만의 처방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우리 병원은 이미 10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이 질환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우선, 확진에 이르는 과정을 확립해서 전통적인 조직검사 이외에도 생화학적 검사, 분자유전학적 검사 등 여러 기법들을 종합적으로 적용해 진단합니다. 약물과 관련해서도 정확한 프로토콜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600여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전체 환자 가운데 75% 정도를 돕고 있습니다. 정밀한 진단으로 갈 길을 예측하고 가능성 있는 약물을 조합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한편, 환자를 잘 돕도록 보호자들을 교육한 덕분입니다.
앞서간다는 건 그만큼 책임도 크다는 뜻이 아닐까요?
미토콘드리아질환은 희귀난치성 신경질환 또는 대사질환이라는 큰 범주로 헤아려도 전문가라 할 만한 선생님들이 전국에 열 분 안쪽일 겁니다. 그 한 부분인 미토콘드리아질환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제가 유일하고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는 환자가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그런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급한 건 신약개발입니다. 보호자들한테서 “약은 언제쯤 나오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몇 가지 약물을 찾아내 동물실험단계에 이른 경우도 있지만, 워낙 기준이 엄격하고 확률이 떨어지는 작업이어서 앞으로도 갈 길이 멉니다.
현재로서는 환자와 의사와 가족이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환자가 좋아진 것이 결코 저 혼자 잘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다른 파트 전문가들과 전공의, 간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가족입니다. 이분들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개 부모 중 한 사람은 환자에게 매달리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제약을 받게 됩니다. 환자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다른 자녀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사례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를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환우회를 지원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환자 외에 다른 자녀들과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파악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위한 국책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결코 편해 보이지 않는 길을 전문 분야로 택하셨습니다. 특별한 뜻이 있으셨나요?
소아과 전공의를 마치고 임상유전학을 진로로 정했습니다. 막연히 희귀질환, 유전질환, 대사질환 분야를 연구하는 게 여러 학문의 바탕이 되고 두루 적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소아신경과학으로 방향을 다시 잡은 건 퇴행성 질환이 많아 원인을 찾는 데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소아신경질환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이렇게 중요한지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뇌전증처럼 환자가 많은 질환을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희귀질환을 연구하면 장차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은사님의 조언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은사님의 말씀대로 에너지 관련 문제가 여러 질환과 연관되어 있음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관심도 크게 늘어서 도무지 해결이 나지 않는 환자를 보내 미토콘드리아 쪽을 살피게 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일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해결 능력도 월등하다고 봅니다. 이어달리기처럼 호흡을 맞춰 같이 잘 달리는 게 중요합니다.
뒤따르는 주자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합니다.
희귀난치성 질환 전문가로서 특별히 당부할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미토콘드리아질환은 10만 명에 한 명 꼴로 발병한다고 합니다. 부담은 한 사람이 지고 나머지 99,999명은 별 탈이 없습니다. 나머지 건강한 이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10만 분의 1 정도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그치지 말고, 사회경제적으로 도울 수 없다면 관심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환자와 함께 섞여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물질적인 지원보다 그런 따듯한 배려가 더 절실한지도 모릅니다.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최재인